내 감정은 다뤄지지 않았다.
밤새 헤맸다. 억압해놓은 것이 풀려버렸다.
하반신이 나체인체 수많은 사람 앞을 걷는다.
점점 가려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치심을 배워간다. 그 과정에서 아무도 없다.
수치심을 숨기고 혼자 다뤄야했다.
그것이 어쩌면 큰 상처였을까.
밤이 끝나고 그동안의 방식으로 움직인다.

내 마음 속에는 다시 아무도 없다.
혼자가 되었고 유년시절이 재생된다.
말이 줄어든다. 아무도 모를테니.
감정도 줄어들고 심란함도 줄어든다.
반쯤 물에 잠긴다.

-
라캉과 펄츠를 빌려온다.
어린아이의 욕망으로 젖가슴을 요구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채 욕구가 되어 떠돈다.
늘 유지되던 마음의 체계가 무너져 혼란스럽다.
해결되지 않은 채 과제로 남는다.

맑스의 비유처럼 하나의 유령이 마음을 떠돈다.
죽은 모습으로 살아있는 욕구라는 유령이.

내 낡은 서랍 속에서 밀어넣었지만
억압한 마음을 이따금 구린내를 풍긴다.
얼굴은 긴장된다. 그것을 들킬까봐.
-


무언가 이룰 수 있는 때이다.
이 느낌을 기다린 걸까.
무언가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
불안하지만 침착해진다.

이제 선택할 시간.
이 에너지를 어느 과업에 집중시킬까.
위대해질 수 있을까. 부끄러움이 쫓아온다.
아니, 나는 그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
"죽으러 가는게 아니야, 내가 정말 살아있는지 어떤지 확인하러가는거야."
역설적으로 죽으면서 살아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어쩌면 지금 가는 길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자기파괴적인 유혹이 든다.

취화선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어떤 그릇이 나오길 원하는가?", "어디 그게 도공 마음대로 되는가요. 불이 말해주는 것이지요."
youtu.be/EwQ1eYaVZZg
그 마지막 장면은 ‘장승업은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예술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http://literarynote.net/chihwaseon/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과 연대, 격려와 칭찬은 진정한 안내자인가?
무엇이 부족했는가.

살아있지 못했다.
실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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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융합, 소통

이 사이에는 뭐가 있는가?

'질문' -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

'미래에 대한 질문' - feedback이 아닌, feedforward : 책임을 묻는게 아닌

                        - 그 사이에 과거와 현실의 문제가 있다. 

혹시 예외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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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일상적인) 말을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어요?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들으니, 심장이 울컥한다. 

행복하지 않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도무지 행복하지가 않다.

반복되는 삶,
반복되는 일상,
그 속에서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알 수 없는 것일까?

행복 추구 - 경험해보지 못하는 느낌 - 좌절 - 성숙한 방어기제로서 감사..
그러나 행복을 추구해서 정말 만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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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친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불편감이나 고생은 기꺼이 감수한다. 헌신형은 상대가 배고픈 상태로 있어야 한다면 더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스트레스를 한참 받고 있는 헌신형이라면 '어디가서 먹고싶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적에 대해 생색내거나 영예나 공적을 확실히 챙기고 싶어하는 욕구가 별로 없다. 그러나 직무가 원활하게 굴러가고 있을 때 감사의 표현을 자주 해 줄 필요는 있다.

헌신형에게 알맞은 직업
 : 비서직, 안전한 직위, 중간관리직  등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직업에서 번성한다. / 보육, 아이들상대, 사회사업처럼 봉사적인 직종이 잘 맞는다. 다른 성격스타일이 있으면서 약간의 헌신형 스타일이 있다면 심리치료자도 좋은 선택이 된다. (서비스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헌신적인 자원봉사자의 존재는 횡재나 다름없다!!) /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일이나 결정내리고 실행하고 책임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하는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헌신형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
: 의사표현하고, 의사결정하는 연습하기
: 당신이 무엇에 대해서 왜 화가 났는지를 털어놓기
: 가족/배우자에 대한 헌신은 칭찬받을만하다. 그러나 다른 관심사를 포기하지말자 / 자원봉사를 하던지 볼링을 치던지 / 스스로를 소중히 하는 방법을 더 잘 익힐수록 인생의 후반기에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더 품위있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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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플과 집단을 위한 결과해석 >>

 [개인차 확인] 76p
 서로의 관계를 이해하고 강화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몇 가지 다른 방법으로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다.
 (그 중) 각 스타일이 각각의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갈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극형과 양심형의 대비는 빤한 문제의 근원이다.

완벽주의자가 될 정도로 깔끔하고 논리적이고 세부사항 지향적인 양심형
화려하고 감정적이고 창의적이고 두서없는 연극형과 충돌한다.

<가정>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양심형 때문에 연극형이 상처를 받는다.
한편 양심형은 연극형이 수표책 기입이나 세금공제 영수증의 관리를 싫어하는 것 때문에 가 나게 되고
연극형의 기분 때문에 아주 짜증나게 된다.

<직장>
양심형이 통제권을 쥐어야 하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방식대로 만사를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연극형은 논리보다는 직감을 믿는 것이 허용되고 세부적인 추후 절차를 완수하지 않아도 되는 일터에서 가장 잘 일한다.

 [구체적인 조언] 77p
 이 모든 제안들에 기저하고 있는 가정은 만약 당신이 모든 이들의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스타일에 따른 유사점과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다면 협동하고 타협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이다.
 당신의 성격을 다르고 때로는 모순되는 스타일들로 구성된 하나의 체계로서 보는 것처럼 커플이나 집단 구성원들의 성격을 통들어 하나의 복잡한 성격스타일 체계로 간주하고 접근할 수 있다.
 정보를 얻으면 그 체계가 더 잘 기능하게 만드는 방법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흔히 갈등의 근원 자체가 해결책에 이르는 길을 가리키기 마련이다. ***

 강한 양심형과 강한 연극형의 결합(아주 흔한 경우임)의 예를 다시 든다면, 그들은 삶의 여러 영역에서 현격히 다르지만 일단 근본적인 차이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결국에는 기능적이고 잘 균형잡힌 단일체가 탄생하게 된다.

건조하고 논리적인 양심형은 연극형의 풍부한 정서적 경험을 통해서 대리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연극형은 양심형이 제공하는 질서와 안전감의 가치인정할 수 있으며, 이는 두 사람 모두가 번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성격의 자화상이 피검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혹은 남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 작업의) 목적은 누군가의 성격을 개조시키거나 자신의 인생관에 맞추라고 타인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성격의 자화상을 활용해서 서로가 닮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의사소통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
75p - 
양심형이 극도로 강한 사람은 감정적으로 인색한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이들의 배우자들은 '사랑해'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를 듣지 못해서 점점 더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중간 정도의 감정적 스타일(아마 연극형이나 민감형)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양심형이라면, 숨겨져 있던 정서성의 보고(寶庫)를 실제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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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가 그렇기에 나도 그럴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동일시 하고 있다.

아버지가 위기를 겪었기에 나는 두려움을 갖고 산다. 그 위기시에 어머니가 발휘한 지혜를 보았기에, 나도 내 아내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라 믿고 산다. 아버지가 현재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나 역시 무기력의 덫에서 허덕인다. 그러나 그렇기에 끊임없이 삶을 이어가며, 꿈을 현실로 바꾸는 아버지의 마음 속의 등불을 나도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아내가 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그렇게 살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한 것처럼 나의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부족하지만 슬픔보다는 행복이 더 많을 것이고, 고집스럽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보다 흔들리고 두렵고 희망이 없다면, 나의 아버지를 보라.
나의 아버지가 궁금하다면, 나를 보라. 우리는 서로의 증거이다.

 

“내가 이 길을 걷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이 길의 역사에 편입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의미 깊은 일인 것이다. 만약 세대 간 단절이 더 중요하다면 땅의 역사를 각별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 길을 의미 깊은 그림일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떤 길목에서 할아버지가 보던 풍경을 똑같이 아버지가 바라보았고, 나 또한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대한 사건이자 역사다. 동일한 풍경을 동일한 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길은 풍경을 기록하고 보존한다. 길은 풍경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홈 파인 레코드판이 소리를 저장하듯 말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은 이렇게 오래된 길들을 그림일기(Figurative Journal)라고 부르는 것이다.” – 정기용, <감응의 건축> 중에서

내 아들아, 내 딸아! 언젠가는 이 아비와의 탯줄을 끊고 홀로 서거라. 그리고 더 당당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거라. 그 모습을 내가 살아서 볼지, 죽어서 볼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어디서든 지켜볼 것이다. 그렇게 당당히 홀로 선 너희들의 모습이야말로 내가 이 땅에서 살았던 존재의 증거다. 바로 그렇게 당당히 선 너희들이 내 삶의 증거다. 내가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증거였듯이.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5061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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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빌려가면
밑줄도 치고 메모도 남겨 돌려주오
당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들려주오

흔적을 남겨주오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랑한 흔적을 남겨주오

그 흔적에서
나는 그대를 알게되오
그대가 세상을 이해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을

오늘도 내 마음에는
그대의 흔적이 남아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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