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nda, R., Tsypes, A., Gallagher, M., & Rajappa, K. (2013). Rumination and hopelessness as mediators of the relation between perceived emotion dysregulation and suicidal ideation. Cognitive Therapy and Research, 37(4), 786–795.

정서 조절에 대한 정의는 다음처럼 변화하였다.
> 정서를 억제/통제하는, 성공/실패하는 과정
> 정서 반응에 적응하는 능력
> 정서 억제/유지/향상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적 요구에 대한 응답(Thompson 1994)

> Gratz와 Roemer(2004)는 인지적 평가와 행동 반응을 모두 포함하는 정서 조절의 개념화를 제안
 - 정서에 대한 인식/이해/수용
 - 부정적인 정서을 경험할 때 목표를 추구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능력
 - 상황적 요구에 따른 효과적인 정서조절 전략에 접근하는 능력에 대한 인식
 - 정서 조절 장애는 이러한 조절 차원의 일부 또는 전부에 문제가 있을 때 발생

정서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면, 다른 어려움들과 관련된다.
 - 주요 우울 장애(Ehring et al. 2010)
 - 불안 장애(Amstadter 2008; Mennin et al. 2002)
 - 섭식 장애(Huges and Gulone 2011)
 - 약물 중독(Cheetham et al. 2010)
 - 알코올 남용(Berking et al. 2011)
 - 경계선 성격장애(Gratz et al. 2006)
 - 비자살적 자해(Gratz and Roemer 2008)

반추와 같은 부적응 인지 감정 조절 전략의 사용, 즉 그 원인, 의미,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부정적인 기분에 반응하는 경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울 증상과 다른 장애(예: 불안, 약물 사용), 자살 충동을 예측한다.

<충동성 * 자살사고>
정서 조절 부족은 자살 사고 및 행동과 관련(Arria et al. 2009; Tama's et al. 2007)
낮은 스트레스 내성,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자살 욕구와 연관(Anestis et al. 2011)
하나 이상의 자살 시도가 있었던 사람들은 시도가 없는 사람들보다 부정적인 기분에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더 높았다(Anestis and Joiner 2011)

<비자살적 자해와 습득된 자살잠재력 * 자살사고>
대인관계모델에 따르면, 자살의 위험요인은 치명적 자해로 획득한 능력과 관련, 이 능력은 고통스럽고 자극적인 경험(예: 성적 학대 이력, 자기 상해 행동, 공격적 행동)을 통해 획득된다(joiner 2005, Bender et al. 2011)

< 참을 수 없는 감정상태에 대한 탈출 * 자살사고>
부정적인 영향의 급성 및 혐오 상태에 압도되어 적응적 대처 전략을 생성할 수 없다고 느낄 떄죽기를 원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이 참을 수 없는 감정 상태는 개인들로 하여금 자살을 탈출로 간주하게 한다(Baumeister 1990).
높은 정서 반응성/부족한 문제 해결 능력은 높은 자살 시도와 관련(Dour et al. 2011)
효과적인 정서 조절 전략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우울증 증상과 무관하게 자살 생각과 관련되고, 이를 희망이 매개한다(Rajappa et al. 2012)

<차등 활성화 * 자살사고>
부정적 영향의 가변성과 불안정성이 광범위한 기분, 부정적 인지 편향, 자살과 관련된 생각과 행동 사이의 연관(Lau et al. 2004). 부정적인 기분이 이러한 생각과 행동과 연관됨에 따라, 개인은 자살과 관련된 도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도식은 그들과 관련된 기분과 인식의 지속적인 재활성화를 통해 강화되며, 궁극적으로 자살과 관련된 생각과 행동이 다양한 부정적인 기분에 반응하여 쉽게 발생하도록 한다(Lau et al. 2004).

<반추 * 자살사고>
반추 : 자신의 부정적인 기분과 그 원인, 의미, 결과에 대한 반복적인 초점맞추기(부정적인 기분에 대한 인지 반응)
부정적 영향(Nolen Hoeksema 2000)
인지적 유연성(Davis and Nolen Hoeksema 2000)
잘못된 문제 해결(Lyubomirsky and Nolen-Hoeksema 1995)
부정적 자전적 기억의 기억과 강도 증가(Lyubomirsky et al. 1998; Thomsen et al. 2011),
미래에 대한 비관론(Thomson et al. 2011)

반추가 우울증과 불안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정신병리학과 관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요 우울증의 시작과 증상의 증가를 모두 예측(Nolen-Hoeksema et al. 2008)
개인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감정의 경험을 피하기 위해 반추와 같은 인지 반응을 사용할 수 있음(Hofmann et al. 2012)
반추는 원치 않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는 것과 관련, 부정적인 감정의 수용과 반비례(Liverant et al. 2011).
반추가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이고 그것들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가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키울 수 있게 함으로써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음
반추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반추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절망 수준이 더 높다(Lam et al. 2003a)
개인의 문제 해결 능력을 손상시키고 긍정적인 미래 기대의 감소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반추는 개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의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기대하게 할 수 있다(Nolen Hoeksema et al. 2008).
반추는 자살 생각 및 행동의 심각성과 동시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Esun 2000, Fairweather et al. 2007, Simon et al. 2007), 자살 생각을 종단적으로 예측(Miranda and Nolen-Hoeksema 2007, O'Connor and Noyce 2008, O'Connor et al. 2007).
반추와 같은 인지적 취약성을 가진 개인이 욕망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식별하고, 불일치로 인한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해결책을 생성하고, 해결책을 구현하는 성공적인 자기 조절의 단계를 완료할 수 없을 수 있다. 고통의 원인과 결과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반추하는 개인은 초기 단계에 갇힐 수 있다. 비록 그들의 상황을 식별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성 반추는 그들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문제 해결 능력을 방해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박탈당하면, 이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피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여 절망적인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절망은 반추가 자살 생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반추의 인지적 결과일 수 있다.

게임이 주는 1차적인? 손쉬운, 패스트푸드같은, 포르노같은 보상.

이것을 안하고 있으면 우울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것은 게임 때문인가? 아니면 손쉽지 않은 현실과의 괴리 때문인가?

현실도 손쉽다면 게임처럼 재미있지 않을까?

라고 했지만 뭔가 헛소리같다.

울며 쓴 편지.

도저히 다시 읽을 수 없었던 마음.

내 삶을 살고, 또 살고, 또 살아내니, 힘이 많이 생겼나봅니다.

혼자이지 않은 곳, 카페에 앉아 불현듯 든 생각에 읽어봅니다.

눈물이 올라오지만, 그때와는 다릅니다.

이제는 읽을 수 있습니다.

더 살아가다보면, 나는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요.

그때까지 나는 나를 잘 살게 도와줄겁니다.

그런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떠나간 떠나 온 사람들이 생각난다.
오늘 본 사람들도 생각난다.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형도. 우리 할머니도.

어쩌면 사랑을 하고 싶은걸까?
좀 더 나아지고 싶은걸까?
할일이 있으나 그걸 회피하고 싶은걸까?
아니면 무언가 보상이 필요한걸까?

오늘 그래도 버티고 견뎌서 이렇게 앉아있는데,
내게 고마워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진작 했어야할 일이라는 후회도,
여기서 만족하지말고 더 해야한다는 당위도 있지만.

오늘의 경험을 남기는 것으로.
나를 칭찬해주자.

좋은 친구를 만나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것 같다.
고맙게도 내가 부족한 계획성, 지속성 등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꾸준하게 연락하고 힘을 불어 넣어준다.
그럼에도 객관성을 두고 있다.

난 물과 같은 사람같다.
어디에 담기냐에 따라 형태와 움직임을 달리한다.
그러면서도 어디론가 흐르고 쏟아지고 싶어한다.
누군가는 섬이 있다던데, 내 마음 속에는 강물이 하나 흐른다.

내몰아치고 싶기도 하고, 
처-얼썩 부딪혀 산산히 부서지고 싶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같고 싶기도 하고,
그대의 뺨 위에 조용히 흐르고 싶기도 하다.

나는 추억한다.
그시절 너에게 주었던 내 사랑을.
그리고 여전히 그것을 좋아한다.
이미 너는 흘러가버렸지만, 나는 고갤 들어 더 멀리 바라본다.

정말 아무 이유없이
새로운 내일이 흐를 것이다.
그 흐름에 몸을 내던지자.
세상의 품에 안기자.

1. 침잠하던 중 : 내 마음의 길을 곧게 내라고 배운다.
2. 가라앉음 : 심리적인 세계가 아닌 현실의 물, 바닥에 내려간다. 두려워 닿지 못했던 감각.
3. 떠오름 : 내면의 심상을 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나는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사실이 필요한 사람이다. 사랑이 중요한 사람이다.'. 이제야 떠오를 수 있다.
3. 성숙의 침잠 : 혼자서 고뇌하는 시간동안 부정적인 감정에 휩쌓이지만,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자만이 아니라 정말로 극복했다면 세상의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간다.
내가 극복한 그 방법을 나눈다.

외부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알고, 세상의 요구를 안다.
그 정반합 과정에서 나온 결론,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렵고 멸시받고 외롭고 우울하고 화나고 차별받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랑을 베풀고,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다.


물은 외로움, 우울함, 무기력한 상태
세례는 심적 우울함, 무기력을 체감하게 해 현실감을 경험하게 해주며, 그 과정에서 물 위로 끌어올려주는, 도움받는 경험.
하늘은 자신이 작아지는 경험
비둘기는 하늘에서 자신에게 내려와주는 대상. 감각하게 해주는 대상.
광야는 외로운, 고뇌하는 상태, 이상상태가 아닌 더 깊어지고 성숙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내면의 공간, 가득 차 있던 것이 비워지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곳.
들짐승은 내면의 야생상태
사탄은 부정적 경험, 욕구와 공격성의 내부화, 자살의 유혹.
천사는 세상의 도움, 사랑받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삶의 코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리엔트 특급 살인  (0) 2022.07.06
행복한 사람의 특징  (0) 2020.10.06
아버지는 내 삶의 증거이다.  (0) 2020.02.17
V  (0) 2020.02.05

염증 : 유해자극에 대한 보호반응. 초기 세포손상 억제, 파괴된 조직/세포 제거, 조직 재생.(위키백과) / 55p. 혈관을 확장해 상처부위에 더 많은 혈액이 흘러들게 하고 열이 발생. 염증이 혈관벽의 투과성을 높여 더 많은 체액이 혈관에서 빠져나가 근육/조직에 축적되게 하여 붓기발생. 

면역계의 위치 : 신경계의 대부분은 머릿 속 / 호흡기계는 대부분 가슴 속 / 면역계는 몸의 모든 곳
> 감염을 일으키는 공격은 어디로든 들어올 수 있기 때문

면역세포 중 대식세포 : 가장 널리, 외곽 수비하는 면역세포, 주로 세균을 막으로 감싸 효소로 소화시켜 파괴, 근거리.
> 주로 내장 벽을 수호. / 골칫거리의 첫 신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림.
< 만약 신호가 없다면? 내 몸을 공격하지 않는가? / 잔병치레 하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도 그런걸까? (자가면역과 연결)

대식세포의 의사소통 방식 : 직접 접촉 / 사이토카인 분비
침입/교전 : 외부 세균 침입, 대식세포[소대장] 출동
지원요청 : 대식세포에서 사이토카인[전보]을 분비
경보접수 : 다른 대식세포의 수용체에 사이토카인 결합, 대식세포의 흥분 / 염증상태 심해짐
지원출발 : 다른 대식세포가 근원지[격전지]로 움직임
전투종료 : 대식세포가 림프구[장군]와 정보 교환을 위해 림프절[지통실]로 이동하여 붓기가 퍼짐
회의/조치 : 대식세포와 림프구의 며칠간 결합, 면역반응 강화/다양화 조치 결정
+ 병력생산 : 골수 / 막사 : 비장

< 사이토카인의 의인화 : 지원군을 부르는 사람. 과도하게/잘못 알리면 어떻게 되는가? 우울해요우울해요우울해요 - 처음에는 도와주지만, 나중에는 짜증내고(오히려 나를 공격함), 혹은 양치기소년처럼 무시하진 않을까?

백신 : 파상풍을 대비한 약한 균을 맞음. 며칠은 면역반응으로 아픔. 해당 항원을 인식하고 대량생산. 몇년동안 계속됨. 2배로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음.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진화로 물려받은, '발견즉시사살'반응을 하는 선천적 면역 방어선 외에, 또 하나의 방어선을 추가로 구축한 것.
* 내 면역계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세계에 관한 무언가를 줄곧 학습하고 기억해왔다. 적응해온 것이다. 백신접종을 통해 내 림프구는 저 바깥 세상에 파상풍균이 존재하며 그것이 무시하지 못할 위협이라는 것을, 그래서 끊임없이 항체를 생산해 계속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71p *

후유증 : 침입세균을 집어삼킨 대식세포는 소화효소, 세균 파편들을 뿜어내서 유독한 영향도 끼침. 마치 초토화, 융단포격전술같은 후유증. 목숨을 살린 대신 손이 불편해지는 것.
장기전 : 감염이 억제만 되었다면 영구히 훼손됨.
자가면역(<축출,사상검증?) : 림프구는 자기와 비자기 구분을 정밀하게 함. 때로는 자기 단백질을 잘못 보고 받아 적대적 면역반응을 일으키기도 함. 우리 자신에 맞서는 항체(자가항체)를 쏟아냄. 췌장의 인슐린만드는 세포는 아군의 포화공격을 당하기도 함(당뇨병).


그렇다면 우울과 염증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 자기비난이 일어난다는 것은 안하려고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읽어준다면, 내 삶을 점검해봐야한다는 뜻이 아닌가? 내 삶의 어떤 부분이 내게 염증을 만드는가? 싫증과 염증은 같은 것 아닌가?
< 자해의 쾌감은 어디서 오는가?

압니다.
내가 해야하는 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해야하는 걸.
눈물이 흐를 뿐.

내 내부의 약하고 금방 흔들리는 힘보다 외부의 대상, 더 강하고 영속적인 존재를 상정하는 것. 
뇌에서는 정수리와 전두엽 사이의 느낌.
아마도 영성.

그로인해 다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
버틸 수 있는 것.

 

보기전에는 제목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
뭔가 특급 살인이 일어났다는 느낌인데, 원제는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다보고 의미부여하면 제목이 더 와닿는다.

주인공인 푸아르 탐정은 두개의 달걀이 대칭을 이루지 않아서 밥을 못 먹고 한쪽 신발에 똥이 묻었다고 다른 쪽도 더럽히는 사람으로, 항상 질서와 체계, 동등함을 추구한다.

라쳇(조니뎁)의 식사를 같이하자는 제안을 선약 때문에 거절한 푸아로 탐정.
이후 티타임은 혼자 책을 보며 웃고 있자, 라쳇은 불쑥 찾아와 합석하며 말한다.
"You know, dessert is an indulgence, and I feel kinda silly and stupid indulging alone."
> 알다시피 디저트는 "맘껏 즐기도록 허락된 것"인데, 혼자 즐기려니까 좀 한심해보이더라구. (너처럼ㅋㅋ)
영감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지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조롱을 같이 하고 있다. 둘다 못나보이게 만드는 자학/가학적인 유머.
그런데 Indulgence가 카톨릭에서는 소위 면죄부로 알려져있는, "대사"의 의미가 있다. (죄에 대한 벌을 대신 사해준다.)
dessert는 죄의식에서 풀어주는 느낌일까? 당과 지방에 대한 불편감같은 것 말이다.
벌써 죄를 고백하고 있다.

제가 신부도 아니고, 죄가 없으셔야 대신 해드리죠?

과한 해석인가? 이후 대사에서는 라쳇이 탐정에게 "무고한 자의 복수자"라는 일을 '대신' 해주길 제안한다.
무고하냐는 질문에 자신은 "사업가"라고 한다. 감정인들이 잘못해서 문제가 생겼다며,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한다.
한참 자기 고백을 하고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라쳇. 탐정의 거절에 대해 돈으로 회유하고 총으로 협박하지만, 탐정은 그의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다며 명확히 의견을 말한다.(자넨 이 영화 아니였으면 해적이였을거야...)
라쳇은 그래도 자기 케이크(어쩌면 고해성사)는 마음에 들었냐고 묻고, "Perfect"했다고 한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가다 쌓인 눈 때문에 탈선하고,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게 된 상황.
에스트라바도스(선교사)는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할지, 루시퍼처럼 떨어질지 주님 뜻에 달려있다는 말을 한다.
라쳇은 12개의 깊이가 다른 자상을 입은채 사망한다.
의심하며 갖가지 인종차별을 기반으로 투사하는 장면들.
탐정은 범죄자의 이상행동을 감지할 줄 안다. 영혼에 균열이 생길 정도가 돼야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믿는다.

[데이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스포니까 어느정도 생략]
우리의 정의로움, 양심은 어디갔는가? 데이지(순결)의 죽음과 함께 죽어버렸고, 묻어버렸다.
상처받은 자로 대변되는 우리의 감정에는 치유가 필요하다. 안식, 구원이 필요하다. [12사도와 예수]
탐정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이성은 불균형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 찌르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의 자리에 있는 할머니인가? 종교적 해석은 내공이 부족하여 ..

해가 떠오르는 곳, 탐정은 구원된 기쁨을 기념하는 중이다. "He is on Holiday"

이 영화는 정의와 구원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무엇을 '옳은' 것이라고 정할 것인가? 살인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파스칼의 말처럼,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정의는 저쪽에서는 불의이다.

Orient : 해가 떠오르는 곳이기에 우리가 지향하는(Oriented) 곳이 되고, 근원적인(Original) 질문을 하게 만든다. 때로는 강렬한 태양에는 그림자가 길어지듯이, '서양인'에게 '동양'이라는 다른 지점은 때로는 불쾌한 자신의 어둠을 투사하여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Orientalism).

누군가의 Orient는 어떻게 Express(press out)되는가? 말/상징/행동, 혹은 (범죄)사건으로 드러난다.
표면적으로는 카세티의 죽음, 데이지의 죽음. 내적으로는 순결하고 소중했던 마음의 죽음.
그 과정에서 얼어붙고, 탈선된 사람들. 이들에게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대신 용서(대사)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향하는(할) 곳을 명확하게 해줄 사람, 태양/구원을 향하는 급행열차를 태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Orientation : 지남력의 뜻도 있었다.
 한 인간이 일상생활을 건전하게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위 환경 중에서 특히 자기가 처해있는 공간, 시간 및 상대하고 있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을 지남력(orientation)이라 하는데, 이것이 상실된 상태를 지남력상실(disorientation)이라고 한다. 예컨데, 교실에 앉아 있으면서 극장에 앉아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면 공간에 대한 지남력을 상실한 것이고,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밥 을 왜 안주느냐고 한다면 시간에 대한 지남력을  상실한 것이며, 자기 어머니를 보고 누이라고 부른다면, 이는 사람에 대한 지남력을 상실한 것이다.
+ 내 생각 > 나는 누구인가? 나의 오리지널이 만약 타인의 오리엔트에 의해 흔들린다면, 지남력상실의 위기-푸아로 말에 따르면 영혼의 균열-에 놓인다. 
(https://m.blog.naver.com/sandi3303/90101004515, 이정균, 1992: 107, 정신보건사회복지실천론 등- 확인해봐야함).


자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가져와보자.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지남력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태양을 바라본다. 어디에서 떠오르고 있는가? 그곳이 동쪽이다.
안을 정했기에 밖이 있듯. [법륜스님의 스승님의 가르침] 동쪽을 정했기에 서쪽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것에 비해 한없이 작고 초라한 자신을 발견할 때, 죄책감을 느끼거나 분노가 나타나지 않는가?

우리는 방향을 정하고 싶은데, 이것이 사회 정의라고 하면 어려움이 발생한다.
정의롭고 질서가 있으면 좋겠다. 공평하길 원한다.
한 쪽을 정하면, 그것은 따르게 된다. 반대는 거짓,불의,악,왼손잡이,다른 지역의 사람이 된다.
그러나 내가 그의 입장에 서면? 이전에는 동쪽은 서쪽이 되고, 입장이 바뀐다.
내가 죄스러운 마음이 되고 그의 두려움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장막 속에 있다면, 어디를 지향해야할지 모른다면, 나는 무엇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말은 다시 돌아와 나를 죄인, 못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존 롤스, 무지의 장막]
그렇다면 어떻게 평화, Peace에 도달하는가? [Pax 평화의 여신, 범(汎), Pacfic 태평양]
세상을 돌다보면 만나는, 거대하고 평화로운 것. 아마 그것은 평평한, 보편적인 가치일 것이다.
자 이제 그럼 방향에서 높낮이로, 꼭 평평할 필요가 있나? 모난 곳은 산이기거나 골짜기이다. 독특성도 중요하다.
삶의 편함도 좋지만, 굴곡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힐링이 필요한 사람은 그곳을 가시고, 나는 나대로, 강점으로 산다.

+ 탐정은 왜 그렇게 정의를 고수하는 것일까? 아내와의 일이 있겠지? 나일강의 죽음에서 확인할 수 있길.

 

'삶의 코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코 복음서 1장 1-15절  (0) 2022.09.27
행복한 사람의 특징  (0) 2020.10.06
아버지는 내 삶의 증거이다.  (0) 2020.02.17
V  (0) 2020.02.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