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지금 이 상황은 Going down하는 상황인가요?

사람들은 안젤라의 쌍둥이 동생이 자살했다고 한다. 안젤라는 그럴리 없다고 하지만, 어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마치 승강기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처럼 문이 열려있을 뿐이다.
문지기에게 묻듯 존에게 묻는다. 그러자 막겠다고 말한다.

안젤라 : Hold on, Are you going down? (지금 이 상황이 구덩이로 내려가는 건가요?)
존 : Not if i can help it. (내가 할 수 있으면 안 그러고 싶어.)

승강기가 내려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내가 그렇게 되는 것을 막겠다고 한다면, 재수없는 사람이겠지만,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에게 그러지 않게 막겠다고 한다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상대는 또 누구인지, 그리고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그저 물어볼 뿐, 그리고 '잘' 들어볼 뿐.

어떤 감정일까? 뭐 이런 사람이 다있냐는 당황스러움인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안도인가?

> 이 구간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에서 "Going down"이 나온 구절을 찾아보았다.

욥기
33:24, 28
to be gracious to him and say, 'Spare him from going down to the pit ; I have found a ransom for him'-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He redeemed my soul from going down to the pit, and I will live to enjoy the light.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 고난 속에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중재해 줄 특별한 천사가 있고, 그는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 사람들은 이 천사의 계시의 중보의 가르침을 따라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바른 길로 들어선다면 하나님을 천사를 향해 내가 그들의 대속물을 받았으니 그들이 죽음의 구덩이게 내려가지 않도록 건저 주어라고 명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https://m.blog.naver.com/hongjunseop/70152557260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가브리엘은 길잃은 어린 양을 인도해야한다는 말이 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존은 구원받을 수 없는가? 적어도 가브리엘은 존을 구원할 수 없다.
동생 이사벨의 장례를 부탁하러 온 안젤라에게 자살은 죄악이고 율법상 안 된다는 신부.
안젤라의 동생은 구원받을 수 없는가? 적어도 율법상으로는 안 된다.

> JOHN: Still keeping your all-seeing eye on me, Gabriel? I'm flattered.
> Gabriel : I could offer how a shepherd leads even the most wayward of his flock, but to you it might sound disingenuous.
> 이 구절로 다음을 찾았다.
> 요한복음 John 10:3 The watchman opens the gate for him, and the sheep listen to his voice.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 진정한 목자는 누구인가? 하나의 우리에서 여러 목자들의 양들이 섞여있다면, 자신의 양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정당하게 문으로 들어가, 양을 부를 때 양이 따르는 자이다.
> 누가 우리를 부르는가? 우리의 마음이 가는 방향은 어디인가?

[존이 죽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15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거나, 살상을 많이 했거나, 가짜를 팔아서도 아니다.
사탄이 존의 영혼을 탐내고 있기 때문이다.


[방향을 가르쳐주세요]

나가시는 문은 이쪽입니다.


[World behind world]

천사, 악마, 혼혈종. superego, id, ego 인가?
혼혈종은 인간을 조종한다. 낮은 속삭임에 용기를 얻기도, 악몽을 겪기도 함.
천사와 악마의 손길은 우리 곁에 공존하고 있다고 하는데,
자기 눈에는 개소리라는 존.


[누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나?]

가브리엘은 고통을 이겨내야만,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을 견뎌내야만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타인을 희생시키려 한다. 본인이 감내하는 고통은 무엇인가? 존은 자신을 희생한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을 아는가?


[파우스트적인 결말, 한 발 더 나아가기]

루시퍼와의 거래로, 이사벨을 천국으로 구원받도록 하고 존은 지옥을 택한다.
자기의 충동에 의한 자살은 구원받을 수 없으나, 타인을 위한 자살은 구원받을 수 있다.
자기만족을 추구하던 파우스트가 타인의 행복을 예상하며 구원받듯(죽어가듯), 존도 구원받는 결말이 예상되었다.
여기에서 비틀어지는 장면.
죽지 말고 살아라. 단기 희생으로 끝나지마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구원받을 수 있음을 증명하라.
(칼뱅의 예정설 같다.)


[그래서]

처음의 질문.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 선과 악의 교전,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삶.
우린 구렁텅이로 Going Down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방향을 알려주면 좋겠다.
신이 있다면, 그의 계획 하에 있는가? 아니면 그저 주사위 놀음이며 장난감인가?

어떤 생각과 믿음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가?
신은 있는가? 신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중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신은 누구인가?
모든 건 신 혹은 나 자신의 계획 하에서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나를 더 평온하고 담대하게 만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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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던 중에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중에
더이상 탓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자.
그동안 참 많은 탓을 해왔다.

나의 애착이 이모양인 건, 부모님이 편애를 해서 그랬다.
그런데 부모님도 힘들게 살았다. 그럼에도 잘산다.
여자친구도 좋은 사람 만났다. 그래서 여친 탓도 이제 못한다.
날 이끌어줄만한 좋은 교수님도 만났다.
형이 싫었는데, 좋은 형을 만나서 같이 잘 지낸다.

친구를 신뢰 못하는 건, 어릴 때 그 경험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연락 안해도 잊지 않고 해주는 친구가 셋이나 된다.
사회 탓하다가 도저히 안되서 성격으로 빠져들었다.
이제는 성격 탓이다. 내가 아니라 내 성격유형이 이 모양인 것이다.
회사가 어쩌구 저쩌구 했는데, 사실 내가 잘한만큼 대우해줬고, 난 그마저도 탐탁치 않았다.
정부에서는 교육도 용돈 줘가며 해줬고, 뭐 좀 해보겠다고 했더니 창업지원금도 줬다.
일도 안했는데, 코로나라고 지원금도 챙겨준다.
남들은 빚내면서까지 주식투자해서 돈을 번다. 나는 안하기로 선택했다. 돈 못 버는 것도 내 탓이다.

이제는 더이상 정말 탓할게 없다.
내가 탓할 시간에 남들이 잘살아서가 아니다.
그냥 더이상 어느새 다들 잘지내고 잘해줘서 내가 불만가질 곳이 없다.
받은게 없다고 탓할만한 방어가 모두 깨져버렸다.
바람이 쌩쌩 불어서, 코트를 껴입고 있었는데, 햇빛이 쏟아지니까 덥고, 옷은 벗어야한다.
그런데 그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발가벗어야한다.

이제 남은건 커다란 책임감.
나를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잔혹한 진실.
가난하게 죽는 건 내 잘못이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가.

이제 내가 뭘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난 움직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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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내 복지를 챙길 이유도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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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 인간은 외부자극에 대해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로 인식.
정신분석 : 인간을 생물적인 충동과 어린 시절의 갈등의 희생물로 인식.
성장심리학 (대부분 인본주의) : 
뿌리깊은 갈등 치유나 잠재된 재능/창의성/원동력/동기 등을 되살리기 위해, 앞으로 성숙할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을 둔다.
과거의 정서적인 상처를 치유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
인간은 과거/본성/환경을 뛰어넘어 성장할 수 있으며, 또 성장해야만 하는 것.
(I think, 성장해야만 한다는 것.. 노오력을 말하는 것 아닌가? 이 간극 사이에 현실과 심리학이론의 연결점이 있을 것)
인간은 '정상성(normality)'을 초월해서 성장하고 개발할 수 있고, 잠재능력을 인식/실현/발휘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정서적인 질환으로부터의 해방, 신경증이나 정신병적인 행동이 없는 것은 성장과 충족의 첫 걸음.
정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충분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더 높은 경지, '초월성(supernormality)'을 상실하고 있는 이다.
우리는 인생의 여러 측면이 만족스럽게 충족이 되면서도, 괴로운 지리함이나 역겨움, 절망, 반감, 그리고 생의 무의미함 등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때로 마치 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한듯이 인생을 포기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무엇이 진정으로 문제점이 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때가 있다.
(feat. 김조한, 사랑에 빠지고 싶다)

톨스토이 [참회록]
'무엇 때문에 나는 살아야 하는가?'
'나는 내가 늘 익숙하게 알아오던 나의 생애에서 무엇인가 파괴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을 행복하고 건강한 젊은이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목매어 자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매일 밤 내가 외로이 잠자는 나의 침실에서 밧줄을 없애버리게 되었고, 나 자신의 생명을 총으로 끝맺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이상 사냥도 다니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나는 인생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내 생을 끝맺고 싶다는 충동에 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끝없이 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정신이 이상하지도 않았고, 병을 앓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에게서는 좀체로 발견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정신적/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결과는 무엇일까? 내일은 무엇을 향해 일을 할 것인가? 내 생애의 총 결산은 무엇일까? 왜 살아야만 하는가? 왜 일을 해야만 하는가?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죽음을 기다리면서 생명을 파괴하지 않아야 할만큼 인생에는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것에 대한 알맞는 해답은 있지도 않으며,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끝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성격은 무엇인가?
'의식적으로 자신이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보다도 적게 노력한다면, 여러분은 남은 여생을 불행하게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매슬로우 1967, Neurosis as a Failure of Personal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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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나 나나 울컥 올라온다.

그럼에도 나는 같이 울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당신이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서, 내가 주고 싶다.
나한테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한번 그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인지,
끝내 눈물이 터져나오지는 않았다. 한번 오열해보면 어떨까?

다뤄보기 어려웠던 감정을 다 쏟아내면 어떨까?

가득 쌓여있는 책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게,

내 목에 있는 가래처럼, 끈적하고 더러운 그것을 뱉어내버리면 어떨까.

폐와 심장 그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는 그 느낌을 소리지르고 울어버리면 어떨까.

 

내면에 아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 때 그 아이에게 지금의 내가 한마디 해준다면,
안아준다면, 안아주면서 한마디 건넨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어떤 감정을 같이 느낄까?

난 그저 부둥켜안고 울어버릴 것 같다.

내가 미안해.
그녀의 외부의 대상을 세상으로, 세상을 나로 바꾼다.
더 좋은 세상에 살게 못해서 미안해.

내가 더 좋은 세상을 줄게.
더 좋은 관계를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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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은 다뤄지지 않았다.
밤새 헤맸다. 억압해놓은 것이 풀려버렸다.
하반신이 나체인체 수많은 사람 앞을 걷는다.
점점 가려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치심을 배워간다. 그 과정에서 아무도 없다.
수치심을 숨기고 혼자 다뤄야했다.
그것이 어쩌면 큰 상처였을까.
밤이 끝나고 그동안의 방식으로 움직인다.

내 마음 속에는 다시 아무도 없다.
혼자가 되었고 유년시절이 재생된다.
말이 줄어든다. 아무도 모를테니.
감정도 줄어들고 심란함도 줄어든다.
반쯤 물에 잠긴다.

-
라캉과 펄츠를 빌려온다.
어린아이의 욕망으로 젖가슴을 요구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채 욕구가 되어 떠돈다.
늘 유지되던 마음의 체계가 무너져 혼란스럽다.
해결되지 않은 채 과제로 남는다.

맑스의 비유처럼 하나의 유령이 마음을 떠돈다.
죽은 모습으로 살아있는 욕구라는 유령이.

내 낡은 서랍 속에서 밀어넣었지만
억압한 마음을 이따금 구린내를 풍긴다.
얼굴은 긴장된다. 그것을 들킬까봐.
-


무언가 이룰 수 있는 때이다.
이 느낌을 기다린 걸까.
무언가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
불안하지만 침착해진다.

이제 선택할 시간.
이 에너지를 어느 과업에 집중시킬까.
위대해질 수 있을까. 부끄러움이 쫓아온다.
아니, 나는 그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
"죽으러 가는게 아니야, 내가 정말 살아있는지 어떤지 확인하러가는거야."
역설적으로 죽으면서 살아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어쩌면 지금 가는 길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자기파괴적인 유혹이 든다.

취화선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어떤 그릇이 나오길 원하는가?", "어디 그게 도공 마음대로 되는가요. 불이 말해주는 것이지요."
youtu.be/EwQ1eYaVZZg
그 마지막 장면은 ‘장승업은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예술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http://literarynote.net/chihwaseon/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과 연대, 격려와 칭찬은 진정한 안내자인가?
무엇이 부족했는가.

살아있지 못했다.
실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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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융합, 소통

이 사이에는 뭐가 있는가?

'질문' -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

'미래에 대한 질문' - feedback이 아닌, feedforward : 책임을 묻는게 아닌

                        - 그 사이에 과거와 현실의 문제가 있다. 

혹시 예외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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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일상적인) 말을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어요?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들으니, 심장이 울컥한다. 

행복하지 않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도무지 행복하지가 않다.

반복되는 삶,
반복되는 일상,
그 속에서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알 수 없는 것일까?

행복 추구 - 경험해보지 못하는 느낌 - 좌절 - 성숙한 방어기제로서 감사..
그러나 행복을 추구해서 정말 만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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