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탓할 것이 없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던 중에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중에
더이상 탓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자.
그동안 참 많은 탓을 해왔다.
나의 애착이 이모양인 건, 부모님이 편애를 해서 그랬다.
그런데 부모님도 힘들게 살았다. 그럼에도 잘산다.
여자친구도 좋은 사람 만났다. 그래서 여친 탓도 이제 못한다.
날 이끌어줄만한 좋은 교수님도 만났다.
형이 싫었는데, 좋은 형을 만나서 같이 잘 지낸다.
친구를 신뢰 못하는 건, 어릴 때 그 경험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연락 안해도 잊지 않고 해주는 친구가 셋이나 된다.
사회 탓하다가 도저히 안되서 성격으로 빠져들었다.
이제는 성격 탓이다. 내가 아니라 내 성격유형이 이 모양인 것이다.
회사가 어쩌구 저쩌구 했는데, 사실 내가 잘한만큼 대우해줬고, 난 그마저도 탐탁치 않았다.
정부에서는 교육도 용돈 줘가며 해줬고, 뭐 좀 해보겠다고 했더니 창업지원금도 줬다.
일도 안했는데, 코로나라고 지원금도 챙겨준다.
남들은 빚내면서까지 주식투자해서 돈을 번다. 나는 안하기로 선택했다. 돈 못 버는 것도 내 탓이다.
이제는 더이상 정말 탓할게 없다.
내가 탓할 시간에 남들이 잘살아서가 아니다.
그냥 더이상 어느새 다들 잘지내고 잘해줘서 내가 불만가질 곳이 없다.
받은게 없다고 탓할만한 방어가 모두 깨져버렸다.
바람이 쌩쌩 불어서, 코트를 껴입고 있었는데, 햇빛이 쏟아지니까 덥고, 옷은 벗어야한다.
그런데 그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발가벗어야한다.
이제 남은건 커다란 책임감.
나를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잔혹한 진실.
가난하게 죽는 건 내 잘못이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가.
이제 내가 뭘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난 움직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