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코드

아버지는 내 삶의 증거이다.

Ask-How 2020. 2. 17. 18:07

내 아버지가 그렇기에 나도 그럴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동일시 하고 있다.

아버지가 위기를 겪었기에 나는 두려움을 갖고 산다. 그 위기시에 어머니가 발휘한 지혜를 보았기에, 나도 내 아내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라 믿고 산다. 아버지가 현재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나 역시 무기력의 덫에서 허덕인다. 그러나 그렇기에 끊임없이 삶을 이어가며, 꿈을 현실로 바꾸는 아버지의 마음 속의 등불을 나도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아내가 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그렇게 살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한 것처럼 나의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부족하지만 슬픔보다는 행복이 더 많을 것이고, 고집스럽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보다 흔들리고 두렵고 희망이 없다면, 나의 아버지를 보라.
나의 아버지가 궁금하다면, 나를 보라. 우리는 서로의 증거이다.

 

“내가 이 길을 걷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이 길의 역사에 편입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의미 깊은 일인 것이다. 만약 세대 간 단절이 더 중요하다면 땅의 역사를 각별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 길을 의미 깊은 그림일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떤 길목에서 할아버지가 보던 풍경을 똑같이 아버지가 바라보았고, 나 또한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대한 사건이자 역사다. 동일한 풍경을 동일한 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길은 풍경을 기록하고 보존한다. 길은 풍경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홈 파인 레코드판이 소리를 저장하듯 말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은 이렇게 오래된 길들을 그림일기(Figurative Journal)라고 부르는 것이다.” – 정기용, <감응의 건축> 중에서

내 아들아, 내 딸아! 언젠가는 이 아비와의 탯줄을 끊고 홀로 서거라. 그리고 더 당당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거라. 그 모습을 내가 살아서 볼지, 죽어서 볼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어디서든 지켜볼 것이다. 그렇게 당당히 홀로 선 너희들의 모습이야말로 내가 이 땅에서 살았던 존재의 증거다. 바로 그렇게 당당히 선 너희들이 내 삶의 증거다. 내가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증거였듯이.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506100038)